<aside> 📎 “5년 뒤에 무얼 하고 있을 것 같나요?” “10년 뒤에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 것 같나요?” “N년 뒤에 디자이너로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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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면접을 봤을 때, 공통으로 받았던 질문이다. 당시에는 임기응변으로 얼버무렸지만 솔직히 아직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당장 10년, 20년 후에 ‘되고 싶은 모습’을 희망하기는 쉽지만 그 사이에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뭘 해야 할지, 정말 내가 될 수 있는 모습은 무엇일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직을 준비하며 포트폴리오가 될 만한 작업을 고르고, 자기소개서를 쓰면서도 정작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무심코 신청했던 〈WOMENTOR 2020: 디자인 이모고모〉 행사에서 연사들의 연차별 생각과 고민을 들으며 뜻밖의 위로를 얻었는데, 어쩌면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날의 경험을 전해주려 이 글을 쓴다.
이런 고민을 하며 졸업을 미루는 친구들도 많이 보고, 취직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옥죄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아무래도 평가받는 일을 업으로 삼다보니,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꼭 나에 대한 꾸짖음 같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면서 멀리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를 끼워 맞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젊고,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백문이 불여일견이기에 고민보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졸업 직후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과 첫 직장에서 끊임없이 불안했던 이유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학 4년 동안 남들 다 하는 인턴 경험이 전무한 채로 졸업했다. 아마 그때도 예비 체험을 하거나 공부를 더 하기보다는 실전에 부딪혀보는 것이 경험 측면에서 더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점점 ‘경험이 있는 신입’과 ‘그냥 신입’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진 채로 첫 직장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다.
<aside> 💡 사실 1~2년 차에게 회사는 굉장한 걸 바라지 않아요. ‘선배들처럼 잘해야 해’, ‘필드에 나와 있는 작업을 보면서 나도 저래야 해’ 등 본인만 느끼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오히려 본인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지 않을까. (박연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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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첫 직장에서 만난 선임 디자이너에게 똑같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내 능력을 의심하며 불안해하기보다 꾸준히 노력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따라서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때는 지치지 않도록 다시 나를 다잡고 힘을 얻는 행위도 멘탈 관리에 중요하다(그런데 불안에 떠는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이 그대로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현재 위치에서 그 너머가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면 다방면으로 물어보고 다녀야 한다. 굳이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콘퍼런스나 작은 강연에서도 충분히 물어볼 수 있다. 〈디자인 이모고모〉를 신청한 것도 그래서였다. 꼭 커다란 홀에서 만나지 않아도 모니터 안에 가득 찬 얼굴들이 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더불어 나보다 앞서간 사람들도 똑같이 고뇌했으며, 비슷한 고민을 거쳤다는 것을 알면 마법처럼 정말 괜찮아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근거를 얻었으니까.
당장 목적 없이 일만 쳐내는 것에서 지속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디자이너는 항상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이지만, 당장 지원할 회사를 찾으려면 ‘카테고리’가 필요하다. 마치 어릴 때 RPG 게임에서 포괄적인 직업을 정한 다음, 어느 정도 능력치를 쌓으면 한 계열로 n차 전직을 하며 좁고 깊게 파고드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졸업할 즈음 내가 처음부터 ○○디자이너(브랜드 디자이너, 편집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 영상 디자이너 같은 어떠한 분류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이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지원할 회사를 고를 때는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절댓값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인 나’에 너무 과몰입하다 보면 자꾸 어떤 틀에 갇히게 된다. 틀에 갇히지 않으려면 항상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갖춰야 할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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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해볼지 하나를 할지 고민하시는데… 선택을 해야 하니까… 선택은 질문자님 마음의 소리를 들으세요. 이것저것 주변 환경을 따지지 말고… 이것저것 하고 싶으면 하고, 하나만 하고 싶으면 하나만 선택하고…모든 경험이 귀한 밑바탕이 되도록 잘 수렴하시면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선택하시길! (박연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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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멘트가 마음을 강하게 울린 조언이었다. 어찌 보면 ‘그냥 해!’라는 무심한 답변일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선택하라’는 말인즉, 주변 상황이나 업계의 암묵적인 룰 및 ‘이래야만 한다’라는 왕도 등을 굳이 하나하나 따지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아이들은 남이 어떻든 나의 좋고 싫음이 명확하지 않은가. 이에 반해 학교생활에 성실했던 친구들은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곧잘 무시한다. 하라는 대로 잘하는 착하고 부지런한 친구들이니까. 그렇기에 나의 진짜 생각이나 야망은 저 구석에 묻어두고, ‘가고 싶은 길’이 아닌 ‘가야 할 것만 같은 길’을 가려다 탈이 난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기에, 박연주 디자이너의 답변이 오히려 무책임하다기보다 마음 한구석에 묻힌 나를 끄집어내는 듯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가야만 할 것 같은 길’을 가려고 할까? 이는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방어 기제다. 전성기(과연 전성기란 무엇일까?)에 접어들 때까지 안정적인 로드맵을 그리고 싶으니 선뜻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들. 그래서 괜찮아 보이지만 썩 끌리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는 선택들.
<aside> 💡 다가올 미래는 누구도 정해주지 않잖아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생기시면 그런 비슷한 모습을 갖고 계신 분들이랑 많이 어울리셨으면 좋겠어요. (중략)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 작은 실마리의 생각을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고 분명히 지지하고 있어요. 이게 잘 엮이면 돼요.” (조현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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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협업 속에 살아간다. 조현주 디자이너의 말처럼 나와 궤를 같이 하는 사람을 찾고, 함께 어울리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잘은 몰라도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당장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수십 년을 산 사람도 당장 내일 일은 모르는 것처럼.
내가 막 입학하여 디자인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인스타그램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피드를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고, 그리드가 있는 UI 덕분에 특히 디자이너 및 디자인 전공생들에게 손쉬운 포트폴리오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보니 학부생 시절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거나, 왠지 모르게(!) 매력적인 것처럼 보이고 힙(!!)한 그래픽을 사용한 이미지에 쉽게 현혹되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잘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졸업할 즈음에는 이유 없이 좋은 것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