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예지 님의 경우 서울의 회사에서 근무했다가 대전에 오셨고, 그다음에 런던으로 갔다가 다시 대전에 오셨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서울에 가야겠다는 건 깊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어요. 대전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기에 서울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을 가야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일도 서울이 더 많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무작정 서울에 가서 일했는데 사실 서울에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디자이너에 대한 복지가 좋지 않았고 열정 페이로 정말 힘들게 일을 했어요. 처음 출근한 날 빼고는 거의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였고요. 그렇지만 좋은 점도 있었어요. 큰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만나게 된다든지 일처리 하는 것도 부족한 면이 있었는데 사수, 선임분들께 많이 배웠어요. 실장님들께 배운 것도 아직 많이 써먹고 있고요.
제가 대전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있는데요. 하루는 충무로에 내려서 다른 지하철로 갈아타는 환승 구간에서 사람들이 똑같이 갈아타려고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같이 걸어가는데 좀비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갑자기 이어폰을 빼고 싶더라고요. 이어폰을 뺐는데 정말 떠드는 소리 하나 없이 발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그때 소름이 끼쳤죠. 제가 생각한 디자이너의 삶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대전으로 내려왔어요. 회사를 만들기에는 아직 디자인 내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고요.
유학을 준비하는 1년 동안 유학을 함께 가기로 한두 명의 친구와 함께 셋이 <Design LAB CO>라는 팀을 만들고 대전청년잡지 BOSHU 창간하고 디자인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BOSHU 같은 경우 지금 다른 분들이 너무 잘해주고 계시더라고요. 응원하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UAL(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의 LCC에서 석사를 했어요. 원래는 졸업하고 어느 기간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런던에서 살 수 있게 지원을 해줬었는데 제가 졸업할 시점에는 학생비자가 끝나면 거의 바로 나가야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서울에 있는 스타트업의 브랜딩 팀에서 일하는 걸 제안 주셔서 한국 돌아온 지 1주일도 안 돼서 서울로 갔어요.
Q. 런던에서 한국에 돌아오셔서 서울에 바로 가신 거네요.
맞아요. 한국에 남는다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런던에서 느꼈던 것들을 한국에서 표현하고 풀어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맨 처음 런던에 가려고 했던 목적과 목표를 살려서 한국에서 실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서 회사를 차리게 되었고요. 영국을 가겠다는 목적이 내공을 쌓기 위해, 회사를 만들기 위해 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조금이나마 쌓인 내공으로 운영을 하고 있어요.
Q. 서울에서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런던은 디자인 교과서 같은 도시였어요. 어딜 가든 디자인이 정말 잘 되어있었거든요. 영국 사람들이 시민의식이 좀 높다고 하는데,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높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표현하고 디자인하는 것 자체를 너무 잘하고 있고 디자인을 가깝게 느끼는 것 같았기 때문인데요. 나이 드신 할머니가 정원을 꾸미는 일처럼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일요일마다 동네에서 열리는 마켓의 개인 상점들도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잘하지? 런던이라는 도시가 나한테 왜 디자인 교과서처럼 느껴질까? 를 생각해 봤는데,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많이 노출되어 있더라고요. 런던에 있는 동안 갤러리 돌아다니는 게 굉장히 좋아했는데 내셔널갤러리나 사치갤러리 같은 곳에 가면 큰 명화 앞에 학생들이 앉아서 스케치북에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풍경이 익숙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전에 돌아왔을 때 청년을 대상으로 브랜딩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청년 지원단체 분야에 있는 분들께 강의도 해드리고 컨설팅도 해드렸어요. 대학교에서는 브랜딩이나 디자인 관련으로 특강을 하기도하고. 기업이나 기관이나 스타트업에서 사업 시작하는 분 중 브랜딩에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도 강의를 하고 있어요.
Q. 런던, 서울, 대전이 예지 님께 준 영향이 있을까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영국에 가기 전에는 한국에서는 결과 중심의 디자인이 많았거든요.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나 심지어 학교에서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석사 생활을 하면서 거의 1년 동안은 리서치만 했어요. 석사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시간보다 과정을 위한 리서치에 에너지를 더 쏟았고요. 그 방식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저는 매 과제마다 결과물을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교수님들이 괜찮다고 꼭 결과물을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다음에 생각했을 때 이 방향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되면 바꿔도 된다. 자유롭게 해도 좋다. 대신 왜 이걸 하고 싶은지 이유만 가지고 오라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전까지는 그냥 예쁘면 된다고 생각해서 폰트나 컬러를 사용할 때 결과가 잘 나올 것 같은 걸 선택했어요. 결과 중심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이 “이 폰트 왜 썼어?”, “이 폰트 누가 언제 만든 건지 알아?”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때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 색, 이 서체를 선택했는지. 내가 선택한 서체의 역사는 어떤지,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디자인하고 있었더라고요.